곡성문화원에서는 국역 「오강유고 」집을 발간하였습니다.

문화자료실 - 발행물에서 열람 하실수 있으며 책이 필요한 분들께서는 문화원으로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많은 이용 부탁드립니다

참조
(국역 오강유고 서문 -張志淵)

곡성 출신의 정봉태 군이 나를 따르며 지낸지 몇 해가 되었습니다.
하루는 내가 서울에서 머물고 있을 때 정군이 자신의 스승인 오강(梧岡) 유고(遺稿)를 보여주었습니다. 내가 그것을 읽어보니 오강이라는 사람은 뛰어난 선비였지만 불우한 인물이었습니다. 정군이 다시 나에게 서문 서주기를 청해쓴ㄴ데 나는 정군의 간청을 차마 저버릴 수 없었으며, 또한 오강의 재능과 심지가 아까워 이렇게 서문을 쓰게 되었습니다.
오강은 다른 사람에 비해 불우했을 분만 아니라 천명도 얻지 못한 인물입니다. 무슨 이유일까요? 오강은 남다른 재능으로 기강을 고쳐 세우려는 뜻을 가슴에 품고 온세상에 자신의 견해를 내 놓았습니다. 그러나 조금이나마 뜻이 펼쳐지기도 전에 끝내 실의에 빠져있다가 재앙이 극에 달해 유명을 달리하여 세상이 다하도록 명성을 얻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토록 다른 사람보다 불우한 것이 이미 이와 같습니다만 조물주가 몇 년 만 더 허락하여 도(道) 덕(德)을 펼치는 저술과 가슴속에 있는 말로써 선현이 말로 표현하지 않은 은미한 요지를 감당하게 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겨우 서른 여덟의 나이에 유명을 달리하니 이 또한 오강이 천명을 얻지 못한 것이 너무 심한 점입니다.
그러나 어찌 오강의 흔적이 다 없어지고 명성이 들리지 않겠습니까. 지금 남아 있는 글 몇 편만으로도 그의 사람됨을 살피기에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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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년(戊午年) 단양절에
숭양산인(嵩陽山人) 장지연(張志淵)이 서문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