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의 인물



신숭겸 마천목 유팽노 정운창 정재건 둔산 삼의사 허 섬 신정백 노임수 양원모 신태윤 심민겸 박언배 심민각 김용명

정묘호란때 강호립 막하에서 공을 세운 일심헌 박언배

가문에 충,효,열행이 찬연하다

정묘호란이라고 하면 후금의 침입으로 일어난 우리나라와 후금사이의 싸움이다. 인조 즉위후 집권한 서인의 친명정책과 후금 태종의 조선을 먼저 공략하겠다는 정책의 충돌에 기인된 것이다. 곧 명이 후금을 치기 위하여 만주로 출병하였을 때 그 요청에 못이겨 강홍립에게 1만의 군대를 주어 원조케 하였다.

그러나 형편을 보아 향배하라는 밀지를 받고 명군이 불리하자 후금에 항복하였다. 이때 사계 김장생의 막하에 들어 청주 황주에서 기공을 세웠다. 또 다시 임신전에 또 원하여 출군하니 "인신이 되어 불충하고 불효하면 사람으로서 행세할 수 없다. 내 지금 부모님이 안계시니 효를 다하지 못하고 주상 이몽진 즉 피난해 계시니 어찌 충성치 않으랴"하고 안주싸움에서 공을 세우고 전사하였다. 부인완산이씨의 열녀기사는 장을 달리 하였다. 남자의 할 일이 예나 지금이나 "사람노릇"을 한다면 충·효 이외에 뭐가 있겠는가. 일심헌의 굳은 결심에서 장부의 기상을 보였고 사람의 행실을 배웠다. 집안과 나라, 나라와 집안은 절대적인 유대관계가 있다.
효는 곧 충이요, 충은 곧 효니 효도라면 충이 되고 충을 하면 효가 된다하는 일체감을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