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의 연혁

옛 선조들의 숨결이 스며있는 고장 곡성

백제시대

백제시대에는 欲乃혹은 浴川군으로 불리었는데 우리말을 한자로 빌려 표현한 것으로 욕의 훈인 골이 골짜기의 의미로서 골짜기가 많은 곳(지역)을 의미하는데 地勢에 따라 山脈과 河川의 흐름을 본따 欲乃로 부르게 되었다. .

삼국시대

백제 문주왕때(서기 475)에 군명을 욕내(欲乃, 浴川)라 칭하였고 당시의 읍은 현 죽곡면 당동리에 두었다.

통일신라시대

경덕왕 16년(서기 757)에 곡성으로 개칭하고 그 예하에 지금의 순천시 주암, 쌍암일대인 富有현과 지금 구례군 지역인 仇次禮현, 그리고 화순군 동복면 지역인 同福현을 영속하였다.

고려시대

고려초 昇平郡(현 순천시)에 속하였다가 현종 9년(서기 1018)에 나주목의 속군으로 이속 되었고, 명종 2년(서기 1172)에 감무(監務)가 파견되었으며, 고려말 공양왕 1년(서기 1389)에 왜구의 침입으로 읍이 함락되어 죽곡면 당동리 지역에 위치하였던 읍치가 동악산 아래 현재의 위치로 옮겨오게 되었다.

조선시대

조선 태종 13년(서기 1413)에 현으로 개칭하였으나 정유재란(서기 1597)시 읍이 탕진되어 선조 30년(서기 1597)에 남원 도호부에 합속되었다가, 광해군 원년(서기 1609)에 다시 분리 독립하여 곡성현으로 복설되었다.

근대초기

광무 3년 (서기 1899)에 행정구역 명칭을 곡성군으로 개칭하여 군수를 두었고, 갑인년(서기 1914)에 담양, 구례, 순천, 남원 일부를 편입하여 11개면 126리로 개편되었다.

현재

현재는 1979년 5월 1일 대통령령 제 9409호로 곡성면이 邑으로 승격됨으로써 11개면에서 1읍 10면 126 리로 개편된 후, 1983년 2월 15일 행정구역개편으로 석곡면 운룡리가 순천시 주암면에 편입됨에 따라 1읍 10면 125리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